이 글을 쓰고 있는 이곳은 코로나19 특수격리병실. 즉 음압병실입니다. 병실에 들어오는 간호사들은 고글에 마스크를 쓰고 위생복 위에도 일회용 가운을 입고 있습니다. 주위는 고요하고 1분에 한 번씩 10초간 에어컨에서 바람이 나오는 소리가 들립니다. 침대와 침대 사이는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 함께 격리된 환자의 얼굴조차 볼 수 없습니다. 가끔씩 위문을 대신하는 전화통화 목소리로 그들의 나이를 가늠할 수 있을 뿐입니다. 제가 내원해서 코로나19 검사자에게 들은 첫 문장은 ldquo;많이 기다리셨죠? 방금 한 분이 돌아가셔서 좀 늦었습니다.rdquo;였습니다. 저는 하필 코로나19로 위험하기 그지없는 병원에서 수술을 받아야만 합니다. 병원에 입원하기 위해서는 자비로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특수격리병실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. 그렇게 하루를 병실에서 보내는 중에 노트북을 받아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. lsquo;코로나 블루rsquo;는 lsquo;모든 사람이 각자 1인 병실에 갇혀 있는 듯하다rsquo;고 합니다. 단순히 외로운 것이 아니라 공포와 불안, 경제적 통증과 사회적 적대감이 쌓여 lsquo;코로나 레드rsquo;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 그 무엇보다 안타깝습니다. 이런 상황에서 제가 떠올린 그림동화가 하나 있습니다. 마리예 톨만과 로날트 톨만이 그린 <나무집>입니다. 검푸른 돌고래를 타고 푸른 바다를 나아가는 백곰이 도착한 바다 한가운데 커다란 나무 위에는 나무집이 있습니다. 평화를 찾아 멀리 바다까지 나왔지만 백곰에게는 수난이 찾아옵니다. 전쟁과 같은 수난 중에는 세 가지의 커다란 사회적 형태가 발생합니다. 삶의 기반이 흔들릴 만큼의 혼란(코뿔소가 나무집을 치받는 형태), 종교든 사상이든 정신적 규합을 부추기는 잘못된 결속력(홍학의 무리가 떼 지어 행진하는 형태), 삶의 방식을 유지하기 위해 버거워진 심리적 위태로운 중압감(코뿔소, 하마 등 다수의 동물이 나무집에 매달린 형태). 이 세 가지는 이번 코로나19 사태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. 장기화를 거치며 대상없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원망할 대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. 그런데 이 그림동화에는 그 해법 또한 나와 있습니다. 바다 한가운데를 찾아온 동물 중에 부엉이 세 마리가 있습니다. 부엉이는 지혜를 상징하는데 지혜는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. 경험을 통해 얻는 지혜, 지식을 통해 얻는 지혜, 내면을 탐색해 얻는 지혜입니다. 경험을 통해서도 깨닫지 못한다면, 배움을 통해서도 깨닫지 못한다면, 체화과정을 통해서도 깨닫지 못한다면 앞으로 일어날 또 다른 사태에는 삶이 온전히 흔들릴지 모릅니다. 어떤 상황에도 나무집을 떠나지 않는 백곰과 흑곰에게는 어떤 힘이 있는 걸까요? 어쩌면 이들에게는 세 가지 믿음이 존재했을 것입니다. 서로에 대한 믿음, 삶이 무너지지 않으리라는 믿음, 언제나 높이 떠 있는 달빛 같은 영적인 믿음.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는 어떤 믿음이 코로나19를 이겨낼 힘으로 작용하고 계신가요?
김소옥 동문 (석사 6기) - 함출판사 대표 - 한국창의심리지원센터 센터장 - 한국사이버진흥원 교수 - 동화작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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